
주말에 부산에 내려가야 하는 직장인 A 씨. 퇴근 후, 점심시간, 새벽까지 이어지는 반복된 루틴이 있다. 바로 SRT·KTX 예매 앱 새로고침이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눌러도 좌석은 “매진” 한 줄만 떠 있다. 결국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는 가야 하니까, 일단 타고 나중에 돈을 더 내죠 뭐.”
요즘 고속열차 안에서는 이런 승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상 승차권 없이 먼저 열차에 올라탄 뒤, 승무원이 오면 부가금을 포함한 금액을 내고 입석표를 발권받는 이른바 ‘부정승차 후 정산’ 방식이다. 원래 운임의 두 배를 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표를 못 구하는 것보단 낫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부정승차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 고속열차 좌석 대란, 실제 현장 모습은?
기사에 등장한 실제 장면을 한 번 떠올려 보자. 평일 오후 6시 24분 수서발 부산행 SRT 359 열차. 퇴근 시간대답게 열차 내부는 이미 만석이다. 통로, 차량 사이 연결부까지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애초에 표가 없는 상태로 탑승했다.
승무원이 승차권 확인을 시작하자, 30대 승객이 먼저 다가가 말한다. “동대구까지 가야 하는데, 표를 못 구해서요….” 승무원은 원래 운임 + 100% 부가금을 더해 7만 3600원을 결제받고 입석표를 발권해 준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 역시 “나도요” 하며 지갑을 꺼내든다.
이렇게 기자가 수서역에서 오송역까지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이동하는 동안 이 방식으로 뒤늦게 표를 끊은 승객만 약 30명. 같은 날 반대 방향(부산→수서) 열차에서는 부정승차객이 46명이나 적발됐다.
이제 고속열차에서 부정승차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셈이다.
2. 부정승차, 어느 정도까지 늘어났나?
수치로 보면 상황이 더 명확해진다. 코레일(KTX)과 SR(SRT)의 자료를 보면, 부정승차 적발 건수는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 2017년 : 약 23만 4200건 (하루 평균 642건)
- 코로나 팬데믹 시기 : 약 18만 9200건 (이용 감소로 잠시 줄어듦)
- 2023년 : 약 52만 6900건 (역대 최고치, 하루 평균 1440건)
- 2024년(10월까지) : 약 44만 3700건 (하루 평균 1460건 수준)
코로나 이후 이동 수요가 회복·폭증하면서, 부정승차도 함께 폭발한 것이다. 특히 금요일 저녁 하행선, 월요일 아침 상행선, 그리고 출퇴근 시간대 열차에서는 “부정승차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3. 부정승차 유형, 왜 이렇게까지 다양해졌을까?
흥미로운 점은, 부정승차의 이유와 방식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대략 이런 유형이 목격된다.
- ① 자진신고형 표 없이 탄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제가 자진 신고했으니, 부가금 좀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흥정하는 스타일이다.
- ② 화장실 잠입형 표 검사를 피하려고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적발되면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말을 못 했어요”라고 둘러대는 경우다.
- ③ 적반하장형 “좌석 부족은 코레일·SR 책임인데 왜 내가 두 배를 내야 하느냐”며 부가금 납부를 거부하는 승객도 있다.
- ④ 연기자형(가짜 착각형) 일부러 다른 시간대 표를 싸게 구입한 뒤, “열차 시간을 착각했다”고 주장하며 그 시간대 열차를 타는 방식을 반복하는 유형이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나만 힘든 것 아니다”, “표가 안 뜨니 어쩔 수 없다”는 심리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개별 행동으로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전체 시스템 관점에선 좌석 운영·안전·공정성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된다.
4. 부정승차하면 얼마를 내야 할까? (2024년 기준)
현재 KTX·SRT에서 표 없이 탑승했다가 적발되면 어떻게 될까?
- 기본 원칙: 정상 운임 + 부가금을 합한 금액을 내고 입석표 발권
- 부가금 비율: 2024년 10월부터 운임의 100%로 인상 (이전에는 50%였음)
예를 들어, 정상 운임이 3만 6800원인 구간이라면 부정승차 적발 시 3만 6800원(운임) + 3만 6800원(부가금) = 7만 3600원을 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정승차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돈을 더 내더라도 일단 이동부터 해야 한다”는 승객의 절박함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5. 왜 이렇게까지 표를 구하기 힘들어졌나?
핵심은 “수요는 급증했는데, 공급(열차·선로)은 크게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① 고속열차 수요는 7년 새 16% 증가
코레일과 SR의 연간 여객 수는
- 2017년 : 약 1억 4730만 명
- 2023년 : 약 1억 7149만 명 (약 16% 증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방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 외국인 관광객 증가 등으로 고속열차 수요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② 열차 증편은 8%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고속열차 대수·편성은 8% 증가에 그쳤다. 승객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③ ‘평택~오송’ 구간 선로 포화
가장 큰 물리적 병목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함께 사용하는 평택~오송 구간이다. 현재 이 구간은 5분 간격으로 열차가 다닐 정도로 선로 용량이 포화돼 있다.
새 열차를 도입해도, 이 구간을 추가로 통과시킬 여유 슬롯이 거의 없다. 추가 선로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완공 목표는 2028년. 그때까지는 구조적으로 수요 폭증을 따라가기 어렵다.
6. 부정승차만 탓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부정승차 자체는 명백히 규정 위반이다. 안전을 위해서도, 공정성을 위해서도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오로지 “꼼수 승객 탓”으로만 돌리면 근본 해결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요인을 지적한다.
- 열차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구조적 문제
- 특정 시간대(출퇴근, 금요일 저녁, 월요일 아침)에 승객이 과도하게 몰리는 피크 집중 현상
- 앱·웹 예매 시스템에서 ‘가예약 후 취소’가 빈번해 실수요 파악이 어려운 점
즉, 부정승차는 좌석난과 시스템 병목이 만들어낸 ‘증상’에 가깝다. 그래서 부가금을 두 배로 올리는 방식은 억제 효과는 있겠지만, 좌석 대란을 완화할 근본 처방이라고 보긴 어렵다.
7. 그럼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단기·중기 전략)
① 단기: 수요 분산 & 가예약 억제
- 비혼잡 시간대 운임 할인 확대 승객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새벽·심야·평일 낮)의 가격을 더 과감히 낮춰 혼잡 구간에서 일부를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 취소 위약금 현실화 “일단 잡아두고 나중에 취소”하는 가예약을 줄이기 위해 출발 직전 취소에 대한 위약금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 앱 UI 개선 및 대기 시스템 도입 새로고침을 수십 번 눌러야 하는 구조 대신, 대기열 시스템이나 자동 알림을 도입해 예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② 중기: 선로·차량 증설과 노선 다변화
- 평택~오송 2복선 공사 조기 마무리 선로 용량이 넓어져야만 근본적인 증편이 가능하다.
- 지방 거점 도시 간 직결 노선 확대 모든 교통이 “서울 중심 환승” 구조로 몰리는 상황을 완화해야 한다.
- 중단거리 구간에 준고속·특급 일반열차 활용 KTX·SRT가 아닌 대체 교통수단을 늘려 선택지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8. 승객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팁
제도 개선을 기다리는 동안, 당장 이동해야 하는 승객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 정도를 활용해 볼 수 있다.
- 예매 오픈 시간 정확히 체크 (출발 1개월 전, 특정 시각 등)
- 중간 역 승·하차도 조회해 직통 대신 환승이나 분할 승차를 고려
- 출퇴근·금요일 저녁·월요일 아침을 피한 대체 시간대 선택
- 출발 시간에 덜 민감하다면 일반열차, 시외·고속버스, 항공과의 조합도 검토
물론 이런 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부정승차 후 두 배 운임을 내는 최악의 상황”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9. 정리: “일단 타고 보자”가 아닌,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철도”로
지금의 부정승차 논란은 결국 한국 고속철도 시스템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신호다. 수요 폭증, 선로 포화, 예매 시스템의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것이다.
승객 입장에서는 집에 가야 하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부정승차라도 해서 일단 타고 보자”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안전·공정·신뢰 모두가 흔들리게 된다.
부가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열차 공급 확대, 시간대 분산, 예매 문화 개선, 제도 설계 보완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표 못 구해 부정승차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닌,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철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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